[LA 닮은꼴 포틀랜드 르포] 판매세도 없던 도시가 노숙자 세금 징수
포틀랜드는 오리건주의 중심 도시다. 주 전체 인구(424만 명) 중 약 15%(63만 명)가 이곳에 몰려 산다. 원래는 ‘보스턴’이 도시명이 될 뻔했다. 1845년이었다. 도시를 세우기 전 두 개의 이름을 놓고 동전을 던져 결정된 게 포틀랜드다. 벽화 등 곳곳에서 흔히 보이는 유명 문구는 독특한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포틀랜드만의 개성은 이 한 문장에 응축돼있다. ‘Keep Portland Weird (별난 포틀랜드를 그냥 두어라)’ 포틀랜드의 오늘은 LA와 닮은 데가 많다. 도시는 신음하고 있다. 하나둘씩 사람이 떠나면서 생기가 없다. 그 자리는 노숙자가 메웠다. 지난달 21일 포틀랜드를 찾아갔다. LA에서 보던 광경이 그대로 펼쳐졌다. 10월의 포틀랜드는 우기로 접어드는 시기다. 도시를 동과 서로 가르는 윌라메트강의 브로드웨이 다리 위다. 포틀랜드 중심가인 올드타운으로 향하고 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이곳엔 비가 내린다. 저 멀리 다가오는 올드타운은 잿빛 색채가 짙다. 올드타운 내 유니언 스테이션 앞이다. 기차역에는 노숙자 텐트가 즐비하다. 포틀랜드도 LA와 마찬가지로 마리화나가 합법이다. 심지어 소량의 마약 소지도 가능하다. 마리화나 냄새는 차치하고 악취가 코를 찌른다. 주변 잔디밭은 사실상 화장실이다. 아랫도리를 벗은 채 아랑곳하지 않고 용변을 보는 노숙자도 눈에 띈다. 그들 사이로 걸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한 남성이 입에 뭔가를 물고 라이터로 ‘탁탁’ 불을 붙이고 있다. 비가 와서인지 불이 잘 안 붙는 모양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담배는 아니다. 구깃구깃 접은 은박지에 뭔가를 말아 불을 붙이는 중이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눈이 풀린 남성은 어눌한 발음으로 연신 뭐라고 웅얼댄다. “페티, 페티, 페티”.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의 은어(fetty)다. 김미경 사장은 이곳에서 부한마켓을 20년째 운영 중이다. 김 사장은 “포틀랜드시는 노숙자 세금을 떼가는데 오히려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있다”며 “1994년에 이곳에 왔는데 그렇게 아름다웠던 도시가 이토록 엉망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판매세도 안 걷는 포틀랜드는 노숙자 세금을 걷는다. 노숙자 지원 명목으로 지난 2021년부터 소득의 1%를 징수한다. 결과는 물음표다. 포틀랜드시가 소속된 멀트노마카운티 정부에 따르면 현재 노숙자 수는 6297명이다. 노숙자 세금을 걷는데도 전년(5228명) 대비 되레 20% 이상 늘었다. 사람도 줄고 있다. 센서스에 따르면 포틀랜드는 지난해 전국에서 인구 감소가 심한 도시 중 6번째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이곳의 주민들은 정치 지형을 바꾸지 않았다. 채도 높은 푸른색을 고집했다. 뚜렷한 정치색은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 자료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FEC 최근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4년 간(2018~2021) 포틀랜드 지역 민주당은 총 2651만7426달러가 기부금을 모았다. 반면 공화당은 525만652달러에 그쳤다. 선거가 열릴 때마다 양당의 득표 비율 역시 ‘6대 4’ 또는 ‘7대 3’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가 계속되면 외면하기 어렵다. ‘별난 포틀랜드를 그냥 두자’던 이곳은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 차이나타운 게이트웨이가 있는 번사이드 스트리트와 4가 교차로다. 대형 벽화가 눈길을 끈다. 40피트에 달하는 빌딩 벽면에 참다못한 울분이 새겨져 있다. 문구는 선명하다. ‘Billions spent, Problems worse (수십억 달러를 썼지만, 문제는 악화했다)’ 이 벽화는 포틀랜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난 2021년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해 출범한 단체 ‘포틀랜드의 사람들(People for Portland)’이 내건 벽화다. 이 단체는 벽화에서 두 명의 얼굴을 지목하고 있다. 멀트노마카운티의 검사장(마이크 슈미트)과 의장(제시카 베가 피더슨)이다. 노숙자 문제를 비롯한 보석금 없는 석방 추진, 범죄율 증가 등을 두고 지탄의 대상이 된 인물들이다. 포틀랜드에서 34년째 사는 김영자(70)씨는 “특히 지난 2020년 ‘BLM’ 시위가 폭력적으로 번지면서 이곳에 수많은 상점이 큰 피해를 보았다”며 “이후 공권력에 대한 반감 때문에 경찰 인력까지 줄이면서 길거리에는 마약 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이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올드타운을 걷는데 저 멀리 군중의 함성이 쩌렁쩌렁 울린다. 아우성이 치는 브로드웨이 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다. 약 1000여 명이 운집해 있다. 시위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갈망하는 팻말 외에 뜬금없이 성 소수자의 인권을 강조하는 팻말도 많다. 동성애자끼리 키스하는 퍼포먼스도 펼쳐진다. 트럼프를 향한 욕설이 적힌 팻말도 보인다.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는 친이스라엘 집회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주최 측은 이날 “위협과 안전 문제로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대립과 갈등도 첨예하다. 포틀랜드는 LA와 닮은 데가 많다. 노숙자, 마약, 사법권 축소, 시위 등으로 얼룩져 있다. 윌라메트 강의 차가운 바람처럼 체감되는 현실이다. 오랜 시간 왼쪽으로만 기운 탓이다. 포틀랜드=장열 기자ㆍ사진 김상진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관련기사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3)] 공감대 있어야 이민역사 보존…한인사회도 숙제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2) 보는 이 없는 기록물…낡은 벽이 이민사 전시장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1) 지워질 뻔한 묫자리…굴곡의 땅 지켜낸 이민자포틀랜드 닮은꼴 포틀랜드 포틀랜드 지역 노숙자 세금